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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5. 25.

    by. soo2125

    목차

      지질 고고학이 밝히는 시간의 켜

      지질 고고학에서 핵심이 되는 실천적 영역 중 하나는 바로 유적 발굴 현장에서의 지층 해석(stratigraphic interpretation)이다. 땅속에 쌓인 지층은 단지 흙과 돌로 구성된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 혹은 수만 년에 걸쳐 형성된 시간의 단면이며, 인간 활동과 자연환경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복합적 기록이다. 지층 해석은 고고학 발굴의 뿌리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인류사의 미세한 흐름과 대규모 환경 변화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다.
      지층은 인간의 삶이 축적된 공간적 단서인 동시에, 특정 시대를 반영하는 시간적 지표다. 따라서 지층 해석은 단순한 ‘땅파기’가 아니라,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며 누적된 흔적을 해독하는 과학적 행위다. 여기에는 고고학자의 직관만 아니라 지질학적 분석, 지리정보시스템(GIS), 물리적 시료 분석 등 다 학문적 기법의 융합이 요구된다.

      지층의 개념과 고고학에서의 해석 가치

      고고학에서 지층(stratum)은 각기 다른 시간, 사건, 환경을 대표하는 물리적 층위다. 퇴적 속도, 퇴적물의 성분, 포함된 유물의 유형 등에 따라 구분되며, 이는 과거 인간 활동이나 자연재해, 기후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지층 해석의 핵심은 퇴적 순서를 파악하고 그 속에서 시간의 흐름과 인간 행위의 흔적을 읽어내는 데 있다.
      가장 오래된 지층이 아래에 위치하고, 가장 최근 지층이 위에 있다는 지층 누적의 법칙은 발굴에서 시간의 흐름을 해석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지층이 단순하게 수평으로 쌓이지 않고, 교란, 충적, 매몰, 인위적 정비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복잡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복잡성 속에서 지층 단위의 경계, 구조, 구성물 분석을 통해 의미 있는 해석을 도출하는 것이 지질 고고학자의 역할이다.

      지층 해석에 사용되는 주요 분석 기법

      1. 색상 및 입자 크기 분석
      지층의 색상은 퇴적 환경을 유추하는 데 유용한 지표다. 어두운색의 층은 보통 유기물이 풍부하거나 인위적 활동이 활발했던 장소를 나타내며, 붉은색 또는 황토색은 산화 환경이나 건조 지역의 퇴적 특성을 암시한다. 이와 함께 입자 크기 분석은 퇴적 조건을 파악하는 핵심 수단이다.
      세립 점토층 → 느린 물 흐름, 정적인 환경
      사질 퇴적층 → 강한 유수 작용, 급격한 퇴적 가능성
      혼합층 → 인간 활동 개입, 쓰레기나 건축 잔재 혼입
      이러한 정보를 통해 유적 주변의 환경 상태, 사용 용도, 침식 및 축적 속도 등을 과학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2. 퇴적 구조 및 물리적 형상 분석
      퇴적 구조는 지층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해 주는 중요한 시각적 단서다. 수평층은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경우가 많고, 경사진 층리나 교차 층리는 외부의 에너지 작용—예를 들어 토사 유입, 홍수, 구조물 붕괴 등—을 암시한다. 지층 내 파장형 구조나 래미네이션은 세부적인 환경 변화까지 포착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문화층과 자연 층의 구분

      지층 해석에서는 문화층(anthropogenic layer)과 자연 층(natural layer)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문화층은 인간의

      생활 흔적—예컨대 불탄 재, 벽체 잔해, 도로, 오물—이 포함된 층으로서, 인위적인 변화가 중심이다. 반면 자연 층은 인간 개입이 미미한 자연환경의 퇴적 결과다. 이 둘의 경계는 흐릴 수 있지만, 구성 물질, 유물의 유무, 지질학적 조성 등의 기준을 통해 분석된다.
      문화층 내에서는 해당 시기의 건축 양식, 산업 기술, 생활 방식을 파악할 수 있으며, 자연 층은 해당 지역의 기후, 강수, 식생 변화 등의 외부 요인을 읽을 수 있다. 지질 고고학은 이들 층을 입체적으로 조합하여 인간-환경 상호작용의 장기적인 궤적을 분석한다.

      지층 단위 설정과 정밀 기록의 필요성

      유적 발굴에서 지층 단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연구 전체의 신뢰성을 좌우한다. 각 지층은 독립적인 해석 단위(context)로 다루어지며, 위치, 깊이, 물질 구성, 유물 정보, 채집 시료 등을 종합적으로 기록한다. 이 데이터는 지리정보시스템(GIS)에 연동되어 시공간적 좌표로 저장되고, 3차원 모델링을 통해 유적의 입체적 구조 분석이 가능해진다.
      오늘날에는 수작업 드로잉 대신, 드론 촬영, LiDAR 스캐닝, 디지털 단면 그리기 등 최신 기술을 접목하여 지층 해석의 정확도와 재현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실제 사례로 본 지층 해석의 적용

      ● 차탈회위크(Çatalhöyük, 터키)
      선사시대 도시 유적에서는 벽 위에 새로운 건물을 짓고, 오래된 구조를 의도적으로 매립하는 방식으로 도시가 성장했다. 이를 통해 수직적으로 누적된 문화층이 형성되었고, 각 층은 특정한 건축 방식, 의례 행위, 생활 방식을 보여주는 독립적 단서가 되었다.
      ● 런던의 로마시대 배수로
      배수로 내부의 지층은 도시의 하수 처리 기술, 소비 패턴, 계절 변화를 보여주는 자료가 되었다. 특히 각 층에 포함된 동물 뼈, 식물 씨앗, 그릇 파편 등은 로마 시민의 일상생활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유용했다.
      ● 경주 월성의 성벽 구조
      신라 시대의 왕궁 터에서 확인된 성벽 구조는 붕괴, 보수, 증축의 순서가 층위 구조로 남아 있었다. 이 지층은 문자 기록이 부족한 시기의 정치적 변동, 전쟁, 재난 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였다.

      지층 해석의 연대 추정과 결합 분석

      지층 자체는 상대적인 연대만 제공하므로, 절대적인 시기를 파악하기 위해 방사성 탄소 연대(C-14), OSL(광학적 연대 측정), 자기 역전 연대 분석 등의 과학적 기법이 병행된다. 특히 C-14 분석은 문화층 내 유기물(재, 나무, 씨앗 등)의 연대를 특정해 지층의 시대를 확정하는 데 매우 유효하다. 이와 함께 화학 성분 분석(FTIR, XRF)이나 식물 규소 분석(Phytolith)을 통해, 지층의 구성 물질과 환경 변화의 흔적을 다각도로 입체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