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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고고학(zooarchaeology)은 고고학과 생물학, 생태학, 인류학이 융합된 학문으로, 과거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유물과 유해를 통해 복원하는 연구 분야입니다. 특히 유적지에서 출토되는 동물 유해는 당시 사회의 식문화, 생계 방식, 신념 체계, 자연환경을 간접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핵심 자료입니다.
여기서는 실제 고고학 발굴 사례를 통해 동물 유해가 어떤 방식으로 분석되고, 어떠한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봅니다. 사례 중심의 분석은 단순한 이론을 넘어, 실질적 해석 도구로서 동물 고고학이 지닌 가능성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한반도 신석기 정착지: 개의 의례적 매장과 사회적 의미
전라남도 고흥의 신석기시대 정착 유적에서는 주거지 한가운데서 개의 완전한 유골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유골은 발굴 당시 다리와 척추가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었으며, 위로 다른 유물이 겹치지 않아 독립된 매장 행위였음이 분명했습니다.
특히 개 유골 주변에서 토기 조각과 조개껍데기가 함께 출토되었고, 탄화된 식물 흔적과 불탄 흔적이 관찰되어 의례 또는 상징적 장례로 해석되었습니다. 개체의 골격 분석 결과, 건강한 성체 개로 밝혀졌으며, 뼈의 병리학적 징후가 없는 점에서 사육 상태가 양호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히 가축화의 초기 증거가 아니라, 인간과 동물이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기 시작한 증거로 볼 수 있으며, 신석기인의 세계관과 동물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례입니다.중국 안양 유적: 대규모 제의와 동물의 권력 상징화
중국 허난성의 안양 유적은 상나라의 수도로 알려진 곳으로, 고대 제의와 관련된 대규모 동물 유해가 집중적으로 발견된 지역입니다. 특히 이곳에서는 일제히 도축된 소, 양, 돼지의 유골이 제사터 주변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었으며, 두개골과 다리뼈가 중심적으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유골 표면에는 도축 도구로 인한 절단면과 칼자국이 명확히 나타났고,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이들 유해는 모두 같은 시기에 매장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동물 개체 간 골격 크기와 무게의 편차가 뚜렷하여, 왕실 전용 가축으로 사육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러한 고고학적 맥락은 동물이 단순한 생계 자원이 아닌, 정치권력의 상징이자 제의의 구성 요소로 기능했음을 입증합니다. 특히 의도적으로 사육하고 선택된 동물만을 사용한 점은, 고대 사회의 축산 시스템, 권력 통제 방식, 제사의 사회적 위계를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됩니다.프랑스 중세 도시 유적: 계층에 따른 동물 소비 차이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서 이루어진 중세 도시 고고학 발굴에서는 일반 시민 거주지와 귀족 저택에서 각각 다른 유형의 동물 유해가 출토되었습니다. 노동자 계층의 주거지에서는 돼지, 닭, 염소와 같은 서민적인 가축이 주를 이루었고, 유해에는 불규칙한 해체 흔적과 재활용의 흔적이 뚜렷했습니다.
반면 귀족 구역에서는 사슴, 송아지, 오리, 백조 등 희귀하거나 고급 식재료로 사용되던 동물이 출토되었고, 유해에는 정형화된 절단 흔적이 나타났습니다. 또한 일부 유골은 금속제 식기나 유약이 있는 도자기 파편과 함께 발견되어 연회용 식사로 제공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동물 유해를 분석하면 사회 계층에 따라 어떤 부위와 종이 소비되었는지, 나아가 식자원 분배 방식과 문화적 차이까지 입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남미 안데스 문명: 동물 유전학과 교배 전략의 역사
페루의 카랄(Caral)과 볼리비아의 티와나쿠(Tiwanaku) 유적지에서는 알파카와 라마의 유해가 집중적으로 발견됩니다. 이 유해들은 단순한 가축화의 증거를 넘어서, 의도적 교배와 품종 관리의 흔적을 보여주는 분석 결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DNA 분석을 통해 일부 유해는 하이브리드(혼종) 품종으로 밝혀졌으며, 이는 고대 안데스인들이 섬유 생산과 운반 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교배한 결과임이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탄소 및 질소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고지대와 저지대를 이동하며 방목되었음도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단순히 축산물의 이용을 넘어서, 지역 간 교역, 생태 적응 전략, 기술 전파 경로까지 복원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북유럽 바이킹 무덤: 맹수와 상징체계의 고고학
노르웨이와 스웨덴, 덴마크 일대의 바이킹 전사 무덤에서는 곰, 늑대, 매, 독수리 등 맹수의 유골이 다수 발견됩니다. 특히 곰의 경우, 완전한 형태의 골격으로 매장된 경우가 많으며, 위치상 사람의 시신 옆에 나란히 놓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골격의 형태학적 분석 결과, 이들 동물은 자연사하거나 의도적으로 살해된 뒤 신중히 보존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바이킹 문화에서 곰이나 매 같은 맹수가 죽음 이후에도 전사의 정체성과 용맹함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졌다는 해석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사례는 동물 유해가 단순한 사육 흔적이나 식자원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신화·상징·죽음관의 해석에도 깊은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한국 삼국시대 왕궁 유적: 대규모 돼지 유해와 국가 체계
서울 마포구 아현동과 풍납토성 등 삼국시대 궁궐터에서 발굴된 동물 유해 가운데 돼지 뼈의 밀도가 유난히 높은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이 유해들은 동일한 절단 각도, 부위의 반복성, 해체 순서 등을 보이며, 대량 조리 및 배식 체계가 존재했음을 암시합니다.
동물 유해와 함께 출토된 도기류, 철제 조리 도구, 탄화된 식물류는 당시 궁중 식문화가 조직화한 주방 시스템하에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며, 돼지가 단순히 식량이 아닌 제례 및 의례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함께 제기됩니다.
이러한 자료들은 삼국시대 국가의 행정, 제사, 식자원 관리 체계를 해석하는 데 매우 유효하며, 동물 유해를 통해 국가 차원의 식량 시스템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동물 고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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